"시는 언어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불멸의 예술"

입력 2022-07-13 16:57   수정 2022-07-13 23:39

시인 T S 엘리엇은 “나는 커피 숟가락으로 내 인생을 계량했다”고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에 썼다. 여기서 새로운 건 ‘커피 숟가락’이 아니다. ‘내 인생’도 아니다. 오직 시(詩)만이 손톱만 한 숟가락 하나에 인생을 얹을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하고 싶었을 테다. 언어로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건 쏟아지는 뉴스와 강연, 일상 속 대화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시는 쓰여진 것보다 쓰여지지 않은 곳에 더 많은 의미가 담긴다. 인간에게 단순 정보가 아닌 새로운 경험과 감각과 시선을 선사한다.

최근 출간된 《시의 역사》는 ‘왜 인간은 끊임없이 시를 짓고 읽어왔을까’를 탐구하는 책이다. 책의 문을 여는 건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다. 4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가 갈대로 젖은 점토에 쐐기 모양의 글자를 새겼다. 서사시 속 길가메시 왕은 불로초를 찾아헤맨 끝에 죽음을 비켜 갈 인간은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인다.

“시의 지혜는 우리에게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시는, 아니 어떤 시들은 죽지 않고 (길가메시 서사시처럼) 인간 수명의 한계를 훌쩍 넘어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어째서 그러한가는 수수께끼다.”

책은 이 수수께끼에 각 시대를 대표하는 셰익스피어, 단테, 초서 같은 위대한 시인의 작품으로 답한다. 시인의 생애와 특징을 설명하며 주요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2020년 영국에서 출간됐을 때 더타임스로부터 ‘최고의 문학 도서’라는 극찬을 받았다.

저자는 존 캐리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심사위원을 지낸 인물이다. 500쪽이 넘는 방대한 책이 술술 쉽고 재밌게 읽힌다는 데서 저자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 거장의 문장은 시처럼 수려하다. 예컨대 시의 생명력에 대해 그는 이렇게 경탄한다.

“날마다 눈사태처럼 우리를 무서운 속도로 덮치고 흘러가는 망망한 언어 속에서 시인이 몇 개의 단어를 골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것으로 죽음을 넘어서는 예술을 창조한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그런 저자도 시를 읽는 데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나의 선호도는 독자 여러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시처럼 보이더라도 우리가 다른 정신과 다른 과거를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미학적 판단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의견이 있을 뿐이다.”

시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길 바란다는 저자의 말은 ‘시는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편견과 두려움을 지워내기에 충분하다. 다만 시의 역사라기보다는 영국과 미국 시의 역사에 머문다. 푸시킨, 레르몬토프를 다룬 ‘러시아 문학의 형성’이나 이미지즘 등 ‘서양과 동양의 만남’ 같은 챕터에서 영미문학 너머의 시도 함께 다루려고 노력한 흔적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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